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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막걸리를 넘어 ; 알아두면 깊어지는 발효 기법 이야기

by 시절미식 2026. 6. 17.

씨앗술, 오양주, 이화주, 백수환동주.
이름은 낯설지만 모두 막걸리와 연결된 전통 발효 기법입니다. 알고 나면 막걸리 한 잔이 다르게 보입니다.

들어가며 ; 막걸리 공부가 깊어지면 만나는 것들

단양주, 이양주, 삼양주를 알고 나면 자연스럽게 더 깊은 세계가 궁금해집니다. 씨앗술이란 무엇인지, 이화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백수환동주는 왜 그런 이름인지. 공방에서 막걸리를 배우다 보면 이런 이름들을 하나씩 만나게 됩니다.

 

오늘 소개하는 네 가지는 모두 우리 전통 발효 문화의 일부입니다. 막걸리와 직접 연결되어 있고, 알고 나면 막걸리 한 잔을 마실 때 느끼는 것이 달라집니다. 한식을 전공하고 주방에서 쌀을 다뤄온 사람으로서, 이 발효 기법들이 단순한 술 이야기가 아니라 쌀 문화의 깊은 층 위라는 것을 점점 실감합니다.

 

이글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공방 수업과 전통주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직접 만들어보니 않은 것은 명시하겠습니다.

막걸리를 넘어 ; 알아두면 깊어지는 발효 기법 이야기
막걸리를 넘어 ; 알아두면 깊어지는 발효 기법 이야기

씨앗술 ; 발효를 이어가는 방법

씨앗술을 잘 발효된 막걸리나 술의 일부를 남겨두었다가 다음 발효의 밑술로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빵을 만들 때 사워도우 스타터를 이어가는 방식과 같습니다. 좋은 발효 환경에서 만들어낸 효모와 유산균을 그대로 다음 발효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씨앗술의 핵심은 발효력이 좋은 술을 골라내는 것입니다. 탄산이 활발하게 올라오고, 냄새가 깨끗하며, 신맛이 적당한 술이 좋은 씨앗술 후보입니다. 이 술을 10~20% 정도 남겨두고 새로운 쌀과 누룩을 더해 다음 발효를 시작합니다. 

 

씨앗술을 쓰면 발효 초기 단계가 빠르고 안정적으로 진행됩니다. 이미 활성화된 효모와 유산균이 새로운 원료를 빠르게 발효시키기 때문입니다. 일반 밑술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실패 위험이 낮고, 이전 발효의 좋은 특성이 다음 술에 이어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공방에서 배운 것

해일막걸리 수업에서 씨앗술 개념을 처음 접했습니다. 잘 된 발효물을 이어간다는 것이 단순히 기술 문제가 아니라, 좋은 발효 환경을 유지하고 관찰하는 능력이 문제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양주 ; 다섯 번 발효의 세계

오(五)는 다섯을 뜻합니다. 즉 오양주는 다섯 번 덧술을 거쳐 완성되는 술입니다. 앞 편에서 삼양주가 세 번 발효라고 했는데, 오양주는 그것을 두 번 더 이어간 것입니다. 국내에서 오양주를 만드는 곳이 극히 드뭅니다. 발효 기간만 두 달 이상 걸리고, 관리 난이도가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오양주의 맛은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다섯번의 덧술 과정에서 쌀의 양이 누적되고, 효모가 만들어내는 알코올과 향미 성분이 층층이 쌓입니다.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이 동시에 느껴지며 여운이 매우 깁니다. 도수는 보통 15% 이상으로 막걸리라기보다는 전통 청주에 가깝습니다.

 

느린마을 한번더가 사양주(4회 발효)로 12%를 만들어냈다면, 오양주는 그 위 단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전통주 고급 과정은 한국 술교육원 같은 공식 기관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단양주 >>> 이양주 >>> 삼양주 >>> 사양주 >>> 오양주 순으로 깊어집니다.

 

이화곡과 이화주 ; 배꽃 피는 계절의 술

이화(梨花)는 배꽃을 뜻합니다. 이화곡은 배꽃이 피는 봄철에 쌀가루로 만드는 전통 누룩이고, 이화주는 그 누룩으로 빚은 술입니다. 17편에서 일반 누룩은 밀가루로 만든다고 했는데, 이화곡은 쌀가루로 만든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이화곡 만드는 방법은 독특합니다. 쌀가루를 익반주해 작은 공 모양으로 빚은 후 배꽃이 피는 시기에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킵니다. 이때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자연의 미생물이 곡에 달라붙어 발효력을 만들어냅니다. 계절과 자연을 술 빚기에 끌어들이는 방식입니다.

 

이화주는 우리나라 고문헌인 규곤시의방, 음식디미방 등 자주 등장하는 유서 깊은 술입니다. 맛은 새콤달콤하고 부드러우며, 도수가 낮아 여성들이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쌀누룩에서 오는 깔끔하고 섬세한 향이 특징입니다.

 

쌀 시리즈와의 연결

12편에서 쌀가루 만드는 법을 다뤘는데, 이화곡이 바로 그 쌀가루로 만드는 전통 누룩입니다.
쌀 >>> 쌀가루 >>> 이화곡 >>> 이화주로 이어지는 과정이 쌀 한 톨에서 시작하는 이 블로그의 세계관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백수환동곡과 백수환동주 ; 이름에 담긴 뜻

백수환동(百壽還童)은 백 살가지 살며 다이 아이처럼 젊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름만으로도 이 술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졌는지 느껴집니다. 조선시대 상류층이 즐겨 마셨던 최고급 전통주 중 하나입니다.

 

백수환동곡은 일반 누룩과 달리 약재를 함께 넣어 만듭니다. 구기자, 생지황, 천문동 등 한방 약재가 들어갑니다. 이 약재들이 발효 과정에서 술에 녹아들어 독특한 향과 맛, 그리고 건강 효능을 만들어냅니다. 쌀 시리즈 14편에서 잡곡의 효능을 이야기했는데, 백수환동주는 쌀에 약재를 더해 효능을 극대화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맛은 일반 막걸리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약재의 쌉살한 향이 은은하게 깔리고, 발효에서 오는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집니다. 현재는 한국전통연구소나 한국술교육원 같은 공식 기관에서 복원, 교육하고 있습니다.

 

이화주 vs 백수환동주

이화주가 쌀 본연의 개끗한 맛을 추구한다면, 백수환동주는 약재를 더해 복잡함과 건강 효능을 더한 방향입니다. 둘 다 쌀가루 누룩을 기반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씨앗술, 오양주, 이화주, 백수환동주, 이름이 낯설어도 모두 쌀에서 시작합니다.

쌀을 어떻게 다루고, 어떤 누룩을 쓰고, 몇번 발효하느냐. 그 선택들이 쌓여 전통주의 다양한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쌀 한 톨에서 시작한다는 이 블로그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어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씨앗술은 일반 막걸리와 무엇이 다른가요?

A. 씨앗술 자체가 따로 마시는 술은 아닙니다. 다음 발효를 위해 남겨두는 발효물입니다. 잘 발효된 막걸리의 일부를 씨앗술로 활용하면, 다음 막걸리 발효가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진행됩니다. 빵의 샤워도우 스타터와 같은 개념입니다.

 

Q. 이화주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다만 이화곡에서 만들기 시작해야 해서 난도가 있습니다. 한국술교육원에서 이화주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고, 전통주 전문몰에서 이화곡을 구입해 이화주만 빚어볼 수 있습니다. 봄철 배꽃이 피는 시기에 만드는 것이 전통 방식이지만, 지금은 계절에 관계없이 빚을 수 있습니다.

 

Q. 오양주는 어디서 마실 수 있나요?

A. 국내에서 오양주를 상업적을 판매하는 곳은 극히 드뭅니다. 전통주 전문 바나 약조장 직판장에서 간혹 만날 수 있고, 전통주 갤러리 시음 행사에서 접할 기회가 있습니다.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면 한국전통주연구소 심화 과정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Q. 백수환동주는 약이라고 볼 수 있나요?

A. 약주(藥酒)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되어있지만, 현대적 의미의 의약품은 아닙니다. 약재가 들어간 전통 발효주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술과 약의 경계가 지금보다 유연했고, 약재를 넣은 술이 건강을 보조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현재는 전통문화를 복원하는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쌀 한 톨에서 시작해 이렇게 깊고 다양한 세계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