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술이 된다는 것이 처음엔 신기했습니다. 주방에서 쌀을 매일 다루던 사람이 어느 날 그 쌀이 며칠 만에 전혀 다른 것이 되는 걸 보면서, 발효라는 세계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오늘은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과정, 발효의 원리를 쉽게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들어가며 ; 쌀이 술이 되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주방에서 쌀을 매일 다루면서 쌀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알아갔습니다. 밥이 되고, 죽이 되고, 떡이 되고, 쌀가루가 됩니다.
그런데 막걸리는 달랐습니다. 쌀이 단순히 형태를 바꾸는 게 아니라, 며칠에 걸쳐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변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뚜껑을 열면 올라오는 특유의 향, 날마다 달라지는 색과 기포, 맛의 변화.
오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변화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쌀 시리즈 15편을 통해 쌀이라는 재료를 깊이 들여다봤습니다. 품종, 전분 구조, 수분, 영양성분가지. 막걸리는 그 쌀에 대한 이해 위에서 시작됩니다. 01편에서는 아밀로펙틴이 찰기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 아밀로펙틴이 누룩을 만나면 당으로 분해되고, 그 당이 효모를 만나면 알코올이 됩니다. 살 한 톨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이렇게 이어집니다.
오늘은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원리와 과정을 정리하겠습니다.
막걸리란 무엇인가?
막걸리는 우리나라 전통 발효주 입니다. 쌀, 누룩, 물을 섞어 발효시킨 후 걸러낸 술로, 알코올 도수는 보통 6~8% 정도입니다. 이름의 유래는 '막 거른 술'에서 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정제하지 않고 막 걸러서 만든 술, 그래서 색이 뿌옇고 효모와 쌀 찌꺼기가 섞여있습니다.
| 주재료 쌀 + 누룩 + 물 세 가지가 전부 |
알코올 도수 6~8% 제품마다 다름 |
발효 기간 5~7일 온도에 따라 달라짐 |
색 유백색 효모, 쌀 찌꺼지 때문 |
막걸리는 탁주(濁酒)라고도 부릅니다. 탁하다는 뜻인데, 이 탁함이 오히려 막걸리의 정체성입니다. 맑게 걸러내면 청주나 약주가 됩니다. 막걸리는 그 탁한 부분, 즉 효모와 유익균이 살아있는 그 상태로 그대로를 마시는 술입니다. 이것이 막걸리가 다른 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발효의 원리 ; 당화와 알코올 발효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뉩니다. 당화와 알코올 발효입니다. 이 두 과정이 순서대로, 때로는 동시에 일어나면서 쌀이 술이 됩니다.
1. 당화 ; 전분이 당으로
쌀에 포함된 전분은 그 자체로는 효모가 먹을 수 없습니다. 먼저 전분을 당(포도당, 맥아당)으로 분해해야 합니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누룩입니다. 누룩 속에 있는 아밀라아제 효소가 전분을 분해해 당으로 만드는 과정이 당화입니다. 01편에서 다룬 아밀로펙틴과 아밀로스가 여기서 분해됩니다. 찹쌀처럼 아밀로펙틴이 많은 쌀이 당화 효율이 높아 더 달고 부드러운 막걸리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쌀 전분 >>> 누룩의 아밀라아제 >>> 포도당, 맥아당
2. 알코올 발효 ; 당이 술로
당화로 만들어진 포도당을 효모가 먹으면서 알코올이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알코올 발효입니다. 막걸리를 담근 후 뚜껑을 열면 기포가 올라오는 것이 바로 이산화 탄소가 빠져나오는 모습입니다. 효모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발효 온도가 높을수록 효모가 빠르게 활동해 발효가 빨리 끝나지만, 맛이 거칠어질 수 있습니다.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발효시키면 맛이 더 복잡하고 부드럽습니다.
포도당 >>> 효모 >>> 알코올 + 이산화 탄소
막걸리의 발효는 당화와 알코올 발효가 동시에 일어납니다/ 이것을 병행복발효라고 합니다. 맥주는 먼저 당화를 완료한 후 발효하지만, 막걸리는 두 과정이 한 항아리 안에서 동시에 진행됩니다. 이것이 막걸리를 만드는 방식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단계별 과정
1. 쌀 준비 ; 씻고, 불리고, 찌기
쌀을 깨끗이 씻어 4~8시간 불립니다. 08편 쌀뜨물 편에서처럼 첫 번째 씻은 물은 빠르게 버립니다. 불린 쌀은 찜기에 쪄서 고두밥(지에밥)을 만듭니다. 밥솥에 짓는 일반 밥과 달리, 고두밥은 물을 넣지 않고 쪄서 낱알이 고슬고슬하게 분리된 상태입니다. 이 고두밥 상태가 당화효율에 영향을 줍니다.
쌀 씻기 >>> 4~8시간 불리기 >>> 찜기에 40분 찌기
2. 식히기 ; 온도가 중요한 이유
쪄낸 고두밥을 30도 이하로 식힙니다. 뜨거운 상태에서 누룩을 넣으면 고온에 효소와 효모가 죽어버립니다. 09편 솥밥에서 뜸 들이는 오도를 이야기했는데, 발효상에서도 온도관리가 결정적입니다. 여름에는 선풍기를 이용해 빠르게 식히고, 겨울에는 실온에서 천천히 식혀도 됩니다.
30도 이하로 충분히 식히기, 뜨거운 상태 금지
3. 누룩과 물 넣기 ; 발효의 시작
식힌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넣고 잘 섞습니다. 누룩의 양과 종류가 막걸리의 맛을 크게 좌우합니다. 다음 편에서 누룩을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물을 깨끗한 것을 써야 합니다. 수돗물에는 염소가 들어있어 발효를 방해라 수 있으므로, 하루 전날 받아두거나 정수한 물을 씁니다.
고두밥 : 누룩 :물 = 10 : 1 :12 (기본 비율)
4. 발효 ; 5~7일간의 편화
25도 안팎의 서늘한 곳에서 발효가 시작됩니다. 첫날은 변화가 없다가 2~3일째부터 기포가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하루 한 번씩 뚜껑을 열고 저어주면 산소 공급과 균일한 발효에 도움 됩니다. 5~7일이 지나면 기포가 줄어들고 술 특유의 향이 나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걸러내야 할 타이밍입니다.
25도 내외, 하루에 한 번 저어주기, 5~7일 발효
5. 거르기 ; 막걸리 완성
면포나 체로 발효물을 걸러냅니다. 이때 물을 조금 더 넣어 원하는 농도로 조절합니다. 진하게 걸러낸 것이 원주이고, 물을 넣어 희석하면 우리가 마시는 막걸리가 됩니다. 걸러낸 막걸리는 냉장 보관하며, 효모가 살아있어 시간이 지나도 서서히 발효가 계속됩니다.
면포 거르기 >>> 물로 농도 조절 >>> 냉장 보관
쌀 품종과 상태가 막걸리에 미치는 영향
쌀 시리즈를 통해 품종마다 전분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차이가 막걸리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 찹쌀 달고 부드러운 막걸리 아밀로펙틴 100%라 당화 효율이 높습니다. 단맛이 강하고 질감이 부드러운 막걸리가 됩니다. 전통 방식에서 많이 씁니다. |
멥쌀 드라이하고 깔끔한 막걸리 아밀로스가 포함되어 당화가 찹쌀보다 느립니다. 단맛이 덜하고 깔끔한 맛이 납니다. 현대식 막걸리에 많이 씁니다. |
햅쌀 향이 풍부한 막걸리 06편에서 다룬 것처럼 햅쌀은 아미노산이 풍부합니다. 발효 과정에서 복잡한 향미가 만들어져 더 풍부한 막걸리가 됩니다. |
주방 출신이 본 발효의 세계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것과 발효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요리는 내가 재료를 통제합니다. 불의 세기, 시간, 간을 내가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발효는 다릅니다. 온도, 누룩의 양, 물의 비율을 내가 설정하지만, 그 이후로는 미생물이 일을 합니다. 나는 그저 환경을 만들어줄 뿐입니다.
처음에 막걸리를 담갔을 때, 이틀째 뚜껑을 열었더니 기포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불을 쓰지 않고, 내가 직접 손을 대지 않아도 쌀이 술로 바뀌어가는 과정.
요리를 오래 했지만 발효는 또 다른 감각을 요구했습니다.
관찰하고, 냄새를 맡고, 기다리 것. 그 인내가 막걸리를 만듭니다.
요리는 불을 다루는 기술이고, 발효는 시간을 다루는 기술입니다. 둘 다 재료를 이해하는 것이 시작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쌀 시리즈를 통해 쌀을 깊이 이해했다면, 막걸리를 이해하는 것은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막걸리는 집에서도 만들 수 있나요?
A. 네 가능합니다. 쌀, 누룩, 물, 항아리나 밀폐 요기만 있으면 집에서도 막걸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주세법상 자가소비 목적의 소량 양조는 허용되지만 판매는 불법입니다. 처음 시작하는 분이라면 시중에 판매하는 막걸리 키트를 활용하면 실패 확률이 낮아집니다.
Q. 발효가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가장 흔한 원인은 온도 문제입니다. 너무 뜨거운 고두밥에 누룩을 넣으면 효소가 죽어 당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너무 차가운 환경에서 발효가 지나치게 느려집니다. 두 번째는 위생 문제입니다. 용기에 잡균이 있으면 원하지 않는 균이 자라 맛이 이상해집니다. 용기를 열탕 소독하고 시작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Q. 막걸리와 청주, 소주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막걸리는 발효물을 그대로 거른 탁주입니다. 청주는 막걸리를 한 번 더 맑게 정제한 것입니다. 소주는 발효주를 증류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것입니다. 세 가지 모두 쌀과 누룩에서 시작하지만, 가공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술이 됩니다.
Q. 막걸리를 흔들어서 마시는 이유가 있나요?
A. 막걸리는 시간이 지나면 효모와 쌀 찌꺼기가 바닥에 가라앉습니다. 흔들어주면 이 침전물이 고르게 섞여 탁한 상태가 됩니다. 이 탁함 속에 영양소와 유익균이 담겨있습니다. 맑은 윗부분만 마시면 막걸리 본연의 맛과 영양을 절반만 즐기는 것입니다.
막걸리를 이해하면 쌀을 보는 눈이 또 달라집니다. 밥그릇 안의 쌀과 술잔 안의 쌀은 같은 재료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막걸리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 재료, 누룩 이야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