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집에 초대를 받아 식탁에 앉았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반찬의 개수를 센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상 위에 놓인 그릇의 수가 눈에 들어온다. 반찬이 많으면 “정성스럽다”는 말을 하고, 몇 가지뿐이면 “간단하게 차렸네”라고 느낀다.
맛과는 별개다. 반찬 하나하나가 아주 뛰어나지 않아도, 종류가 많으면 왠지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반찬은 왜 많아야 '대접받는 느낌'이 들까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반찬 수 = 정성이라는 인식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이 감각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궁중 음식의 영향, 가정 내 여성 노동의 역사, 그리고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 식탁이라는 세 가지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1. 반찬 많은 식탁은 궁중 음식의 기억에서 왔다
한국 식탁에서 반찬의 수가 중요해진 배경에는 궁중 음식 문화의 영향이 있다. 조선 시대 궁중에서는 식사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권력과 위계를 드러내는 장치였다. 왕의 수라상에는 수십 가지 반찬이 오르고, 반찬의 수와 구성은 곧 왕의 위상을 상징했다.
이 문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류층을 거쳐 일반 가정으로 내려왔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중처럼 차릴 수 없었지만, “반찬이 많을수록 귀한 상”이라는 이미지는 강하게 남았다. 중요한 손님이 오거나 명절, 제사 때 반찬 수가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반찬의 종류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더 많이 먹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는 손이 가는 몇 가지 반찬만 반복해서 먹는다. 그럼에도 반찬 수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정성의 양이기 때문이다.
궁중 음식의 유산은 이렇게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반찬을 ‘먹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으로도 기능하게 만들었다. 반찬의 수는 곧 마음의 크기를 대신하는 지표가 되었다.
2. 반찬 수는 오랫동안 여성 노동의 결과였다
반찬이 많아야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는 인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 이면에는 가정 내 여성 노동의 역사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오랫동안 집밥은 누군가의 노동 위에서만 가능했다. 특히 반찬은 한 번에 완성되는 음식이 아니다. 각각 다른 재료를 손질하고, 다른 방식으로 조리해야 하며, 보관과 재활용까지 신경 써야 한다. 반찬의 수가 늘어날수록 노동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찬이 많다 = 정성스럽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 말은 곧 “시간과 수고를 많이 들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시간과 수고가 누구의 것이었느냐는 점이다.
집밥의 정성은 종종 말없이 평가되었다. 반찬이 적으면 성의 없다는 인상을 주고, 많으면 칭찬을 받았다. 이렇게 반찬 수는 사랑과 책임의 척도가 되었고, 그 부담은 특정한 역할을 맡은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요즘 들어 반찬 수가 줄어드는 현상은 단순한 식습관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던 노동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반찬이 적다고 해서 마음이 적은 것은 아니라는 감각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
3. 외국인의 눈에 비친 ‘과한’ 한국 반찬 문화
한국 식탁을 처음 접한 외국인들이 가장 놀라는 요소 중 하나는 단연 반찬의 양과 다양성이다. 메인 요리를 주문했을 뿐인데, 수많은 작은 접시들이 함께 나온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들은 무료인 경우가 많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보면, 한국의 반찬 문화는 관대하면서도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왜 이렇게까지 많이 내놓는지, 왜 굳이 여러 가지를 동시에 먹어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다.
이 질문은 한국인에게는 낯설다. 우리는 반찬이 많아야 환대받는 느낌이 들도록 학습되어 왔기 때문이다. 손님에게 음식을 푸짐하게 내놓는 것은 환영과 배려의 표현이고, 부족함은 무례로 여겨질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의 시선은 이 관습을 상대화한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식문화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로 많은 외국인들은 반찬이 많기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음식에 집중하는 식사를 선호한다.
이 차이는 한국 식문화가 정량보다 정성, 효율보다 마음을 중시해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동시에, 그 마음의 표현 방식이 이제는 재고될 시점에 와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반찬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반찬이 많아야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는 인식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다. 궁중 음식의 영향, 가정 내 역할 분담의 역사, 그리고 환대를 중시하는 문화가 겹겹이 쌓인 결과다.
하지만 식탁은 시대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반찬 수가 줄어드는 오늘의 풍경은 정성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정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이제는 반찬의 개수보다, 함께 앉아 먹는 시간이나 대화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한두 가지 반찬이어도 편안한 식사가 가능해졌고, “많이 차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의 식탁에서는 이런 말이 더 자연스러워질지도 모른다.
“많지는 않지만, 같이 먹으려고 준비했어.”
그 말 하나로도 충분한 대접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