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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쌀 한 톨에서 시작합니다.

by 시절미식 2026. 5. 20.

주방에서 배운 것, 시장에서 익힌 것, 숫자로 확인한 것 !

그 모든 것의 시작에서 언제나 쌀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쌀 한 톨에서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쌀 한 톨에서 시작합니다.

01.

주방 안에서 쌀을 배웠습니다.

한식을 전공하고, 처음 주방을 들어섰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쌀이었습니다. 씻고, 불리고, 물 양을 맞추고, 불을 줄이는 타이밍을 익히는 일. 단순해 보이는 그 과정이 사실은 온도, 시간, 비율이라는 요리의 가장 기본적인 언어로 이루어져있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저의 주방 생활은 4년이었습니다. 프랜차이즈 주방에서는 레시피의 표준화와 기초 루틴를 배웠고, 개인 식당에서는 그날 들어온 재료와 그날의 날씨에 맞춰 손을 움직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또한 호텔은 또 달랐습니다. 수십 명, 수백 명에게 동시에 같은 품질의 음식을 내야 하는 환경에서는 감각만이 아니라 구조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모두 쌀밥에서 시작했고, 세 곳 모두에서 쌀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재료인지 다시 깨달았습니다.

 

쌀은 그냥 주식이 아닙니다. 한국의 밥상이 지금의 모습이 된 데는, 이 작은 낱알 하나가 지닌 수분과 전분의 구조가 있습니다. 같은 쌀이라도 품종에 따라 찰기가 다르고, 같은 품종이라도 수확 시기나 보관 상태에 따라 물 비율을 다르게 잡아야 합니다. 주방에서 일하면서 저는 레시피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변하는 과정을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쌀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발효로도 이어졌습니다. 밥이 식으면 생기는 변화, 누룩이 만들어지는 과정, 막걸리가 익어가는 며칠 동안의 냄새와 색의 변화. 주방에서 재료를 다루던 감각이 그쪽으로도 뻗어나갔습니다. 쌀은 밥이 되기도 하고, 막걸리가 되기도 하고, 떡이되기도 합니다. 같은 재료가 전혀 다른 형태와 맛을 가지게 되는 그 과정이 저는 여전히 신기하고 매력적입니다.

 

02.

주방 밖에서 다른 언어를 배웠습니다

주방을 나온 뒤에는 마케팅을 공부했습니다. 외식업과 공간을 어떻게 이야기로 만드는가, 손님이 문을 열기 전에 이미 어떤 기대를 품고 오는가, 그 기대를 어떻게 설명가는가... 이런 질문들을 2년 동안 붙들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마케팅을 배우면서도 결국 돌아오는 자리는 '음식'이었다는 겁니다. 어떤 식당이 왜 잘 되는지를 분석하다보면, 메뉴 자체보다 그 음식이 가진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반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김치찌개 한 그릇을 먹는 게 아니라, 그 김치찌개에 담긴 어떠한 기억이나 분위기를 먹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자기 음식의 이야기를 직접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외식업의 재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숫자는 냉정합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아무리 감각적인 공간도, 재무 구조가 받쳐주지 않으면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효율적인 구조를 갖췄어도, 손님이 다시 찾을 이유가 없으면 결국 무너집니다. 주방에서의 실무, 마케팅, 재무. 이 세 가지를 차례로 경험하면서 저는 외식업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입체적인 곳인지 조금씩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막걸리와 떡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흐름 위에 있습니다. 쌀이 발효를 만나면 막걸리가 되고, 쌀가루가 열을 만나면 떡이 됩니다. 이 두가지는 지금 전통식품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젋은 세대가 막걸리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고, 떡은 디저트로 재해석되며 공간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그 흐름이 유행이 아니라 재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것이 다시 살아나는 방식, 그 안에서 어떤 사업의 가능성이 있는지. 그것이 제가 지금 가장 관심 있는 질문입니다.

 

03.

이 블로그에서 쓸 것들, 그리고 꿈꾸는 것

이 블로그의 시작은 쌀입니다. 품종이야기, 밥 짓기의 원리, 쌀이 다른 재료와 만났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

현장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그러나 어렵지 않게 쓰려고 합니다. 전문가를 위한 글이 아니라, 음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을 목표로 하려고 합니다.

 

그 다음은 막걸리 입니다. 발효의 원리부터, 지역마다 다른 막걸리의 맛, 직접 빚어보는 과정까지 써볼 생각입니다. 전통주는 지금 아주 흥미로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소규모 양조장이 늘고, 페어링 문화가 생기고, 막걸리를 와인처럼 즐기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주방 출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막걸리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떡도 마찬가지 입니다. 명절에만 꺼내던 음식이 아니라, 계절과 지역과 의례가 담긴 이야기로서의 떡을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떡이 어떻게 현대적인 디저트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도 함께 담겠습니다.

 

그리고 아주 머나먼 미래지만 내 상품을 만드는 창업 이야기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막걸리나 떡을 직접 만들고 배울 수 있는 공간. 재료와 발효와 손의 감각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곳.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방향에 가까운 꿈이지만, 이 블로그가 그 과정의 기록이 되었으면 합니다. 잘 되는 것만이 아니라 고민하고 수정하는 것까지, 솔직하게 남기려고 합니다.

 

 

 

천천히 쌓아가겠습니다. 쌀 한 톨이 밥 한 그릇이 되고, 막걸리 한 잔이 되고, 떡 한 점이 되는 것처럼 글도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모여가길 바랍니다.